한국 서양화의 중견작가로 알려진 이상일 화백은 구파발을 벗어나 일영쪽으로 향하다 보면 다리건너 북한산이 바라보이는 양지 바른 곳에 예스런 단층 한옥들이 고즈녁하게 자리잡은 곳에 그의 화실이 있다.

화실로 들어가는 입구는 마치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꽃, 잘 익은 붉은 열매를 맺은 나무들로 꾸며져 있다. 이곳이 바로 ‘이상화실’ 이다. ‘이상화실’은 오늘도 10여명의 제자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곳에 자리 잡은 지도 약 23년이 된다. 각기 좋아하는 소재를 다루며 열심히 그리는 화가 지망생들의 모습이 진정 그림 그자체가 좋아서 그리는 순수한 모습으로 보여 참으로 좋아 보인다.

이 화백은, 제자들과 물감을 하나의 물질에서 자연스럽게 다른 물질로 흘러나가며, 내가 바라는 것은 질서와 체계를 화폭에 은유한 캠퍼스에 붓을 터치한다. 이런 가운데 이 화백의 소박한 미술세계가 여기에 녹아 있음을 알수 있다.

이 화백의 미술세계를 살펴보면, 첫째 그의 그림 가운데는 갈색이 많이 쓰이고 있다. 이 화백이 즐겨 쓰는 갈색은 흔히 실용적인 색채라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 그림들을 한참 동안 보고 있으면, 근검절약하고 꾸밈이 없는 그 성격 그 자체와 그의 생활을 보는 것 같다.

기름이 덜 묻은 까칠 까칠한 붓으로 여러번 덧칠을 하면서 전체화면이 번트시엔나 (Burnt Sienna)계통의 갈색계로 밝고 어두움이 표현되어, 조금은 삭막하고 윤기 없이, 과장하거나 군더더기는 일체 배제하고, 더욱 보색 같은 화려한 색체대비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순박한 그 자체를 나타낸 그림이다. 그의 얼굴에서 나타나듯, 선하고 꾸밈없고 더부룩하게 자란 수염도 깍지 않은, 그대로의 소박함이 그의 그림에 나타난다.

두 번째로 그의 그림 소재에는 향토색이 짙다. 그의 소재는 옛날 우리 선조들이 즐겼던 지게나 장독대, 소, 초가집 등을 즐겨 소재로 쓰고 있다. 암울하던 옛날의 잿빛 하늘 아래 우리 선조들이 정 붙여 살던 그런 물건들을 소재로 다룬다는 것은 작가의 세월을 흘려보내면서 겪었던 온갖 어려움에서 벗어나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려는 하나의 인간 본연의 회기성이기도 하다.

세 번째로 그도 역시 자연인인가 보다. 그는 즐겨 사생을 다니고, 제자들과 함께 스케치도 하고 현대사생회에 참가하기도 한다. 그의 그림 속에는 자연을 다룬 그림이 많다. 자연을 소재로 한 가운데 길을 그리기를 조아한다. 길은 우리가 걸어온 자기인생을 되돌아보거나, 앞으로 가야 할 운명 같은 묘한 뉘앙스를 풍긴다. 이 화백은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해서 그림을 그리는 자연주의 화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화려한 테크닉이나 고도의 감성적인 표현은 없어도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묘한 향수와 매력을 느낀다.

그는 나이 이제 환갑을 맞아 황해도 수안에서 홀로 내려왔다. 오늘 내가 두고온 산하를 생각하며 캠퍼스에 그림을 그린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이 모든 아름다움을, 이 땅에 함께 살았던 지금까지, 나는 오늘도 가슴으로 그림을 그린다. 땅위의 모든 아름다운 사물을 감추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 ... 그 실향민의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다.

‘이상화실’은 전원과 잘 조화된 정원과 화가의 손때가 묻은 캠퍼스로 가득하다. 그의 그림을 보면 어딘가에 시골 촌부의 넓고 가득한 품이 그리워진다. 이 화백의 삶은 그다지 풍족하지는 못했어도 그의 그림에는 감히 접할 수 없는 할머니의 품격과 함께 천진난만한 소리가 뭍어나오는 것을 느낌으로 알수 있다. 이상일의 그림은 거의 독학으로 이루어졌다.

그가 살아가는 방법 중 어느 하나도 즐거움과 고통이 수반되지 않는 것이 없다. 그 나름대로 철학과 의미가 있는 그런 삶의 방법들이 있다. 어떤 사물을 두고 이를 표현하는 것에는 여러가지 표현방법이 있고 그 중에는 사실이라는 하나의 개념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의 시각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많다. 어떤 철학적인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 그야말로 순수한 화가의 삶과 그의 그림세계를 들여다보면 또 다른 삶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전업작가의 길을 한번도 포기한적이 없다. 또 그림을 등한시 한적도 없다. 독학으로 화업에 전념해 이젠 중견화가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하였고, 이제 와서 삶과 예술을 재조명 할 때가 되었다. 화가 이상일의 생애를 살펴보면 살아온 행적이 가까운 이웃에서 흔히 발견 할수 있는 선한 이웃들의 모습으로 중첩됨을 느낀다. 이 화백은 가감한 사실 묘사를 통해 구도의 간결함과 질감이 한국정서에 가장 잘 표현한 서민작가다.

"서양화는 면, 명암등 실재감의 표현을 중요시 하고, 입체적 동적인 표현을 중요시하고,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며, 또한 표현의 차이도 있고, 서양화는 모든 사고의 근본을 인간 본체에 두고 인간을 한 개의 존재로 보며 논리적 방식으로 보급한다. 대상과 작가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몰입하고 융화하는 듯한 그림을 그린다. 그래서 표현기법은 화면에 선과 여백을 상징적 공간감을 살리지요"

겨울 나그네
나그네는 정해진 길이 없다.
걷고 또 걸어도 끝이 보이질 않는다.
이정표가 있어도 나에겐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발길 닿는데로 산도 넘어보고 강도 건너본다.
가다보면 할아버지 할머니 아이도 강아지 산새도 만난다.
나그네는 오라는 곳도 없다.
가고 만나고 스치는 모두가 새롭기만하다.
그래서 떠나나 보다.
어느덧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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