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강호동양학자·작가
조용헌 강호동양학자·작가

부적(符籍)은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귀신을 쫒는 종이쪽지나 어떤 물건을 가리킨다. 符(부)는 ‘부호’라는 뜻이고 籍(적)은 ‘문서’를 가리킨다. 일단 귀신이 붙어 있으면 되는 일이 없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귀신은 사람에게 붙을수도 있고, 방이나 사무실에 붙어 있을수도 있다. 만약 이런 귀신이 인간과 같이 공존해 있으면 운(運)에 방해를 받는다고 본다. 공동묘지를 불도저로 밀고 택지를 조성해서 그 땅에 주택이나 아파트를 짓는 수가 있다. 이런 아파트에 들어가면 공동묘지에 살고 있던 귀신들과 아파트에 사는 거주자가 서로 동거하는 셈이다. 이런 주택, 아파트는 피해야 한다. 그러나 알기가 어렵다. 거기에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를 일기가 어렵다. 보통 사람 눈에는 안 보이니까 말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외부인이 그 아파트에 입주했을 때 원래 그 자리가 공동묘지 였는지를 모를수가 있다는 점이다. 주변에 병원, 학교, 편의시설이 가까이 있으면 입지가 좋다고 판정하지, 그 자리가 원래 공동묘지 였는지를 새로 입주하는 사람이 면밀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차원의 정보이다. 아파트 건설업자들도 ‘우리가 지은 터가 공동묘지 자리 였습니다’라고 광고 하겠는가? 필자도 40대에 IMF를 겪으면서 엉겹결에 공동묘지 자리에 지은 아파트에 입주했던 적이 있다. 결과는 시달렸다. 우선 몸이 안 좋아졌다. 자고 일어나면 몸이 굳어지는 현상이 왔다. 자고 나면 몸이 개운해야지 명당이다. 숙면이 잘 안되면 그 자리는 빨리 피해야 한다. 그러나 돈 문제도 있고, 직장인 대학 출근 거리 문제도 있고, 아이들 학교 통학 문제도 걸려 있어서 쉽게 이사가기도 어렵다. ‘이 터가 문제가 있구나!“ 꿈을 꾸면 머리가 잘려나간 사람의 모습, 다리가 떨어진 모습의 사람들이 한번씩 나타났다. 그 동네 토박이들에게 탐문 조사를 해 보았다. ”원래 이 터가 무엇하던 터 였습니까?“ ”동네 공동 묘지였습니다“. 응급 처방으로 현관 앞과 안방, 아이들 방에다가 부적을 구해서 붙여 놓았다. 효과는 50% 정도가 나왔다.  

부적이 효과가 있으려면 전제 조건이 있다. 그 부적을 쓰는 사람이 기(氣)가 있어야 한다. 정신집중력이기도 하다. 단전(丹田) 수련을 해서 몸 안에 기운이 돌아가는 사람이 써야만 부적으로서 효과가 있다. 몸 안에서 기운이 도는 현상을 소주천(小周天)이라고도 하고, 아주 고단자가 되면 대주천(大周天)이 된다고 한다. 소주천 정도의 계제(階梯)에 도달한 사람이 종이에다가 붓으로 먹물 글씨나 볼펜으로 써도 그 글씨에는 기가 들어가 있다. 귀신은 그 글씨에서 빛이 번쩍거리는 에너지를 감지한다. 말하자면 눈이 부셔서 접근하기 어려운 이치와 같다. 인간은 맨 눈으로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볼수 없다. 눈이 부시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기가 가득찬 도인이 글씨를 쓰면 귀신은 그 글씨를 바라다 볼수가 없다. 그래서 그 방안이나 사람에게 붙지를 못하는 것이다. 소주천이 되면 주천화후(周天火候)라고 해서 온 몸에 불기운이 돌아다닌다. 불기운은 양기를 상징한다. 그러니까 도인이 쓴 부적에는 불이 펄펄 휘날리는 셈이다. 조선중기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이 있었다. 반대 당파였던 송시열에게 독극물인 비상(砒礵)이 들어간 약처방을 해 준 도인이다. 송시열도 정적이었던 허목에게 자기 고쳐달라고 약처방을 부탁했다는 점도 아이러니하다. 미수가 준 처방전에는 비상을 2냥 넣도록 되어 있었는데, 송시열의 아들이 독극물인 것을 알고 비상의 용량을 줄여서 1냥만 넣고 약을 달렸다고 한다. 이걸 먹고 낫기는 나았다. 100% 완치는 안 되고 70%가 개선되었다. 혹시 날 죽일려고 비상을 넣었나 하는 의심 때문에 완치가 안 되었던 것이다. 

핵심 이야기는 비상이 아니고 미수가 붓글씨 중에서 전서(篆書)를 잘 썼다는데 있다. 전서 중에서도 옛날에 쓰던 서체인 고전(古篆) 글씨의 대가였다. 흔히 ’지렁이체‘라고도 부른다. 꼬부랑 꼬부랑 지렁이 기어가는 모양의 글씨체이다. 이 글씨가 부적의 효과가 탁월하였다. 미수가 쓴 고전 글씨를 집에다 걸어 놓으면 재수가 있다고 당시 사람들이 믿었다. 여기 저기서 미수 글씨 받으려고 줄을 섰다. 미수가 동해의 삼척부사를 하고 있을 때 삼척에 해일 피해가 한번씩 있었다. 이 해일 피해를 막으려고 미수가 글씨를 써서 비석에 새겨 두었다. 이 비석글씨가 동해척주비(東海陟州碑)이다. 삼척항구가 내려다 보이는 육향산 언덕에 세워져 있다. 이 척주비를 세운 뒤로 해일 피해가 줄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 부적 중에서 가장 공공적인 목적을 띈 파워플한 부적비(符籍碑) 가 아닐수 없다. 이런 레벨의 글씨를 쓴 허목을 보면 결코 범상한 인물이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수가 내단수련을 해서 주천화후의 경지에 올랐던 인물이거나, 아니면 신장(神將:정신세계의 에너지)을 부렸던 인물이 아닌가 싶다. 부리던 신장의 기운을 이 글씨에 투영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이 정도 수준이 아니면 해일을 방지한다고 감히 비석을 세울 정도의 배짱과 만용을 부릴 사람은 없다.  

화순의 도사 조갑환도 부적을 한번씩 써 주었다. 그런데 그 효과가 있었다. 삽겹살에 소주나 즐겨먹고 주색잡기를 좋아하는 보통 사람이 부적을 써 봐야 아무 효과가 없다. 그냥 낙서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종이 쪽지 나부랭이를 부적이랍시고 비싼 돈을 지불하고 집에다 붙여 놓는 사람은 사기 당하는 셈이다. 부적의 효과 여부는 테스트를 해 봐야 한다. 조갑환은 ’鍾鬼‘라고 쓴 글씨를 자기 딸의 방문 위에 붙이라고 하였다. 글씨는 먹물로 쓴게 아니었다. 경면주사(鏡面朱砂)를 갈아서 빨간 색의 글씨를 썼다. 경면주사는 붉은 색이 나오는 광물질이다. 부적 쓸 때 경면주사를 갈아서 쓴다. 붉은색이 귀신 물리치는 효과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레드카펫도 붉은 색인데, 원래 귀신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용도였다. 그러다보니 값이 비쌌다. 금값과 맞 먹었다. 이걸 써 놓으니까 굿을 잘 하던 무당이 이 집에 들어오려고 하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저 글씨좀 떼어 주세요. 들어갈 수가 없어요“. 이 부탁을 받고 딸이 鍾鬼(종귀) 부적을 떼니가 그 무당은 ”휴우 이제 들어갈수 있겠네“하고 방안에 들어 왔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드는 의문은 왜 ’鍾鬼‘라고 썼을까? 종(鍾)은 쇳소리가 난다. 쇳소리는 귀신을 도망가게 하는 소리이다. 그래서 절에서 종을 때리면 귀신이 다가오지를 못한다. 종은 그런 효과가 있다. 유명한 4.19 선언문에도 ’저 자유의 종을 난타하라!‘라는 대목이 있다. 자유의 종이 독재의 컴컴한 밤을 물리쳐 버린다는 비유가 아니겠는가! 무당이 ’종귀‘ 부적 글씨를 보고 방 안에 들어오지 못했다는 것은 조갑환의 도력을 상징한다. 짐작컨대 신장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파워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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