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예술은 세상을 조금 덜 두렵게, 서로를 조금 더 가깝게 만든다"

미국의 거리예술가 셰퍼드 페어리의 말이다. 그는 아티스트지만, 예술이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개선해 주는 기폭제가 되도록 다양한 메시지를 작품에 녹여냈다. 

롯데뮤지엄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 전시. 사진/손원태기자
롯데뮤지엄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 전시. 사진/손원태기자

1일 찾은 롯데뮤지엄에서는 셰퍼드 페어리가 보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Do It Yourself(네 스스로 해라)"라는 메시지는 페어리의 예술관으로, 그가 포착한 사진 속 인물들에서는 붉은 빛의 강렬한 색채 속 타오르는 눈동자들이 있었다. '오베이 자이언트' 시리즈부터 히잡을 두른 여성, 꽃이 핀 지구 등 인류와 환경을 초월한 우리 사회가 직면한 이슈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셰퍼드 페어리의 30년 예술적 궤적들을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약 460여 점을 한데 모았다. 국내 최대 규모 전시로, 오는 11월 6일까지 열린다. 

롯데뮤지엄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 전시. 사진/손원태기자
롯데뮤지엄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 전시. 사진/손원태기자

우선 전시장 입구부터 '오베이 자이언트' 시리즈가 시선을 당긴다. 이 작품은 1989년, 프랑스의 프로 레슬러인 '앙드레 르네 루시모프'의 초상을 모티브로 페어리가 친구들과 함께 작업한 스티커 형식의 제작물이다.

'거인 앙드레에게는 그의 패거리가 있다'가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페어리는 본격적으로 거리예술에 뛰어든다. 스케이트보드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페어리의 스티커가 퍼져나가면서 한때 초상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송사에 휘말리기도 했다. 페어리는 이후 1990년 존 카펜터 감독의 '화성인 지구 정복' 영화를 관람한 후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오베이(OBEY)' 슬로건에 주목하며, 이를 '오베이 자이언트' 캠페인으로 승화시킨다. 

실제 전시장에는 앙드레의 초상을 한 스티커들이 거리 곳곳에 부착된 모습이 사진으로 진열됐다. 공장단지부터 대형 광고판, 아파트 등 다양한 장소에서 부착된 스티커들은 '사회적 관습'에서 벗어나 '예술적 자유'를 추구하는 작가의 메시지를 담았다.

페어리는 붉은색과 노란색, 파란색 등 강렬한 색채 대비로 다양한 패턴과 옵아트의 작품들을 만들었다. 이는 스케이트보드 잡지에도 실리며, 젊은층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져갔다. 페어리는 앙드레 얼굴에 '오베이' 텍스트를 반복적으로 새기며, 사람들이 '복종'에 대한 단어에 의구심을 가지길 희망했다. 별 모양부터 카툰, 콜라주 등 다양하게 그려진 작품들이 강렬한 시각적 색채로 전시돼 있었다. 

롯데뮤지엄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 전시. 사진/손원태기자
롯데뮤지엄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 전시. 사진/손원태기자

이후 사회적 억압에 짓눌린 여성의 다양한 눈동자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포스터의 형식으로 그려진 작품들은 붉은 톤의 색감이 강렬한 메시지를 낸다. 대부분의 작품에는 작품과 관련이 있는 신문 기사들이 발췌돼 콜라주로 녹아있다.

여기에도 '오베이'라는 텍스트가 공통적으로 새겨져 '행동하라'라는 저항적 메시지가 함께 부각된다. 히잡을 두른 여성부터 경찰제복을 입은 여성, 프랑스 국기 속의 여성, 법을 상징하는 저울을 목걸이로 한 여인 등 여성들의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부조리한 시대를 고발하는 듯한 눈빛으로 타오르고 있다. 

그중에서도 2019년 탄생한 '안젤라 누비안'은 인권 운동가인 안젤라 데이비스 초상에다가 아프로헤어를 합성해 눈길을 끈다. 작품 상단에는 'POWER AND EQUALITY(힘과 평등)'이라는 단어를 넣어 아프리카 여성계에 대한 사회의 불합리한 처우를 꼬집는다. 그럼에도 안젤라의 시선은 높은 곳으로 향하고 있어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페어리는 이처럼 여성들의 대담한 시선을 눈동자로 담아냈다. 실제로 페어리의 작품들은 2017년 촉발된 '미투 운동' 당시 포스터로도 사용됐다. 예술이 시사적이고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21세기형 프린트 미술의 한 전형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롯데뮤지엄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 전시. 사진/손원태기자
롯데뮤지엄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 전시. 사진/손원태기자

페어리는 현재 기후위기와 같은 환경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아이즈 오픈(Eyes Open)'은 페어리 그간의 삶과 신념을 집약해 보여준다. 장미와 카네이션을 합쳐놓은 꽃은 지구 위에서 피어 있다. 지구 안에는 '아이즈 오픈'이라는 텍스트와 함께 크게 눈을 뜬 눈동자가 그려졌다. 이는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의 오류와 거짓을 파헤칠 때 비로소 삶에서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어 페어리는 '위기' 시리즈를 선보인다. 검게 물든 바다와 하늘, 석유 페인트통 등 암시적 메시지를 담은 도상에다 '지구 위기', '기후 온난화' 등 경고성 메시지도 새겨 넣었다. 페어리는 실제로 판화 판매금을 환경단체에 기부하는 등 행동에도 나섰다. 

롯데뮤지엄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 전시. 사진/손원태기자
롯데뮤지엄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 전시. 사진/손원태기자

아울러 전쟁에 대한 목소리도 지속적으로 냈는데, '워 바이 넘버스'는 수류탄 위에 핀 꽃을 소녀가 들고 있어 꽤 충격감을 전달한다. 꽃과 수류탄이라는 이질적인 도상에 이를 바라보는 소녀의 미소, 머리 위로 나는 전투기 등은 전쟁이 주는 극한의 공포와 아이러니가 묻어 나온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의 초상을 기반으로 한 '희망(HOPE)'도 페어리의 대표작중 하나다. 성조기의 핵심 색깔인 파란색과 빨간색이 오바마 얼굴을 중심으로 양분화돼 극명한 색채 대비를 이룬다. 당시에는 사진작가인 매니 가르시아가 찍은 오바마의 초상에 '진보(Progress)'를 넣어 실크스크린 포스터 작업을 진행했다. 이를 '진보' 대신해 '희망'을 넣었고, 거리에 배포됐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의 공식 캠페인 포스터로도 활용됐다. 먼 곳을 바라보는 오바마의 눈동자가 마치 희망을 바라보는 듯한 인상을 주었고, 실제 포스터가 하나의 작품처럼 울림을 전달했다. 이 작품은 2009년 런던 디자인 뮤지엄의 '브릿 인슈어런스 디자인 어워즈(Brit Insurance Design Award)'에서 올해의 디자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미국 워싱턴 D.C.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서 소장됐다. 미국 타임지 표지로도 장식됐다. 

롯데뮤지엄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 전시. 사진/손원태기자
롯데뮤지엄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 전시. 사진/손원태기자

전시장 끄트머리에는 거리예술의 기반이 되는 스케이트보드장이 진열됐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스케이트보드와 앙드레 초상 스티커 등이 전시돼 페어리가 추구하는 예술관을 집약해서 보여준다. 거리예술이 대중문화와 광고, 선전 그래픽으로 되는 과정을 따라갈 수 있는 기회였다. 

롯데뮤지엄은 이번 전시를 기념해 '환경과 희망'을 주제로, 서울지역 5곳에 페어리의 대형 벽화를 추가로 제작했다. 석촌호수와 롯데월드타워·몰, 성동구 피치스도원, 강남구 도산대로로 5곳이다. 페어리가 직접 작업해 "행동하라"라는 작가의 메시지를 보다 간결하게 체험할 수 있다. 

예술이 지나치게 사회적, 정치적 의미로 확장되는 것에 비판적 소지도 있지만, 페어리는 "그것이야말로 한 걸음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페어리는 지난달 29일 있었던 기자간담회에서 "예술은 사람들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사람들에게 벽화의 규모는 화젯거리가 되고, 벽화를 통해 도시가 개인의 표현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상기시켜 주기도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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