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행가가 대중들의 인기 용광로에서 데워지면 감성 폭탄이 된다. 이런 노래는 애간장을 다 태우는 가슴팍을 대변하는 사연을 머금은 절창이다. 사랑과 이별을 모티브로 한 인생의 외나무다리와 오솔길, 때로는 백척간두(百尺竿頭)에 두 손을 마주 잡고 올라선 주인공들의 상황을 묘사하면 더욱 절절해진다. 그러다가 어느 한쪽이 불가피하게 유명을 달리하여, 영원한 이별이 된 사연을 오선지 위에 노랫말로 드러눕히면, 그 노래는 필시 영화로도 환생한다. 1979년 우리나라에 이런 노래, 눈물을 머금은 감흥 다이나마이트가 터졌다. 윤시내가 절창한 <열애>다. 그 시절 이 노래는 남녀 세대 차이를 가리지 않고 가슴 저린 감동과 아름다운 순애보(純愛譜)라는 찬사를 받았었다. 2022년 BTS가 세계의 탑(TOP)으로 등정한 글로벌 K-팝 고지는 대중예술의 인공위성 같은 별이고, 2012년 싸이가 터뜨린 <강남스타일>은 지구 축을 뒤흔든 감성 폭탄이었는데, 1979년 윤시내의 목소리를 타고 이 세상에 나온 <열애>는 대한민국을 순애보 폭탄으로 눈물 글썽거리게 했다. 이 절창 <열애>는 우리 대중가요 100년사에서 가장 처절한 곡절을 품은 노래이고, 활활거리는 불꽃처럼 부른 노래이고, 불렸고, 불려야 할 절창이다. 뜨거운 마음속 불꽃을 피우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진주처럼 영롱한 사랑의 불꽃을~.

처음엔 마음을 스치며 지나가는 타인처럼 / 흩어지는 바람인 줄 알았는데 / 앉으나 서나 끊임없이 솟아나는 / 그대 향한 그리움 / 그대의 그림자에 쌓여 이 한 세월 / 그대와 함께 하나니 / 그대의 가슴에 나는 / 꽃처럼 영롱한 별처럼 찬란한 / 진주가 되리라 / 그리고 이 생명 다하도록 / 이 생명 다하도록 / 뜨거운 마음속 불꽃을 피우리라 /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 진주처럼 영롱한 사랑을 피우리라~.

노랫말이 오선지 위에서 타서 잿가루로 흩날리는 듯하다. 이 생명 다하도록 뜨거운 마음속의 불꽃을 피우리라. 이 노래는 이 절창의 모티브 편지를 유서처럼 남긴 배경모(1943~1978)가 36세로 요절(夭折)한 뒤, 그의 아내 김지현이 작곡가 최종혁에게 편지 내용으로 건네졌고, 이 한 편의 시 같은 편지에서 <열애> 노래가 탄생했다. 배경모가 아내 김지현에게 쓴 마지막 편지로 가슴을 적셔보자. ‘너의 이름은 지현이라 했다. 손이 닿으면 손끝이 시려 울 것 같은, 가을의 한 나래에서 우리는 만났다. 나는 너의 애달픈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고개를 숙이면 너의 영혼마저 쏟아져버릴 것 같아, 지현아~ 너는 그때 스물하나의 꽃다운 나이였다. 서른여섯이 되도록 내가 한 일은 무엇일까.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했고, 두 아이의 아버지였고, 목숨을 나누는 친구가 있었고, 술잔에 담긴 시가 있었고, 그리고 나의 전부를 사랑해준 나의 아내 지현이가 있다. 이제 죽음은 고통이 아니라 나의 친구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데려가려 한다는 것을 너는 알고 있다. 그러기에 창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죽음인지 내 아내의 인내스러운 발소리인지, 이젠 구별할 수조차 없구나. 네 이름은 지현이라 했다. 나는 남편이라기보다는 변덕스러운 연인에 불과했다. 나는 알고 있다. 너의 사랑, 이제는 모든 것은 끝났다. 음악도 끝났고, 술병은 비었고, 친구들도 떠났다. 너를 남겨 두고 이제는 내가 간다.’

<열애> 노래는 1970년대 부산 문화방송 음악 PD이자, 심야 음악방송 <별이 빛나는 밤에>의 인기 DJ였던 배경모의 비극적인 일대기를 그린 영화 <열애> 속에 흐른다. 최백호 등 부산 출신 가수들과 친분이 두터웠던 배경모는 부산지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린 음악프로그램 DJ였지만, 직장암에 걸려서 36세에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남겨놓고 요절하였다. 이에 1982년 김호선 감독은 부산 관객들을 겨냥해 100% 부산 로케이션으로 영화 <열애>를 제작하였다. 그해 7월 17일 처음으로 부산 동명극장에서 개봉하여 무려 1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였다. 개봉 첫날 감독과 주연 배우들이 사인회를 열었고, 배경모의 미망인 김지현을 초대하는 등 행사를 열었다. 영화에서 배경모 역은 김추련(1946~2011), 아내 역은 나영희(1961~)였고, 영화 속에는 많은 노래가 흘러나온다. 영화가 시작될 때는 <열애>, 배경모가 DJ를 하면서 연인이던 아내와 속삭이던 장면에는 <DJ에게>,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는 최백호의 <아내에게 쓴 마지막 편지>가 흐른다. ‘그 음악은 제발 틀지 마세요 DJ / 잊었던 그 사람 생각나요 DJ...’ 최백호가 부른 노래는 배경모가 아내 김지현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편지에 곡을 얽은 곡조다.

당시 윤시내는 26세였다. 본명 윤성례. 1952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서울예술고를 졸업하고, 1974년 영화 ‘별들의 고향’ 주제가 <열아홉 살 이예요>를 불렀으며, 1975년 미8군 무대를 통하여 데뷔하였다. 이때 윤시내가 데뷔한 미8군 무대는 제2기 미8군 무대로 치면 된다. 제1기 미8군 무대는 6.25 전쟁 직후이던 1955년 미8군사령부가 일본에서 서울 용산으로 이전해 와서 1965년 베트남 전쟁터로 이전해 가기까지의 뮤지션 시장이다. 30만여 명이 주둔하던 대형 음악시장이었다. 그후 오늘에 이르는 미8군 무대는 평택·동두천·부산·왜관 등지의 5~2만여 명을 상대로 한 무대다. 윤시내의 대표곡은 <공연히>, <열애>, <DJ에게>, <공부합시다>,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 등이다. <그대에게서~> 노래에서, 그대는 사랑하는 연인이 아니라 돈이다. 그녀는 1979년 TBC에서 주최한 세계 국제가요제에서 이 노래 <열애>로 은상을 수상하였으며, 1980년~1984년까지 MBC 10대 가수상을 5년 연속 수상했다. 윤시내는 1984년 연 소득 1,628만여 원을 신고하여 가수 부문 7위였단다. 그녀는 한 때 미사리 카페촌에서 가수 오균아(거창 출신)와 같이 ‘열애’라는 라이브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 무대는 김병걸의 서정가요 콘서트 무대 등으로도 종종 오픈되는 곳이며, 미사리 조정경기장을 바라보면서 오늘까지도 운영되고 있다. 2022년 5월 KBS1 아침마당 화요초대석에 출연한 윤시내는 <열애> 노래는 자신의 가수 인생을 펼치게 한 곡이라고 해도 된다고 했다. 윤시내는 올해 고희(古稀)의 고개를 넘어 붉게 익어가는 인생 황혼의 나그네다.

1960~1970년대는 시가 노래가 되기도 하고, 소설이 노래가 되었다가 다시 영화가 되는 문화예술 트렌드가 새벽안개처럼 일어났었다. 1950년대 후반 6.25 전쟁의 상흔을 이겨내는 동시에 1960년대 산업화로의 질주와 병행된 서양 문화의 서세동진(西勢東進) 추이와도 맞물린 경향이었다. 1964년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노래 <동백아가씨>도 프랑스 소설가 알렉산더 뒤마 피스(1824~1895)의 소설 『춘희』(1848)가 모티브였고, 노래는 영화 ‘동백아가씨’로 환생하기도 했었다. 이때는 라디오드라마나 영화 주제가를 부르는 가수가 대중들의 인기를 얻던 시절이다. 이미자·최희준·패티김 등이 그런 가수들이다. 그래서인가, <열애>는 노래로도 영화로도 열렬한 인기를 받았었다. 이 노래는 1990년대 전통가요 부활기를 거쳐 21세기 트로트 열풍 시대에 이르기까지 최백호·김태연 등이 리메이크로 열창하면서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생명 다하도록 뜨거운 마음속 불꽃을 피우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진주처럼 영롱한 사랑을 피우리라~. 사랑을 피우리라~. 윤시내의 탁성(濁聲) 목소리가 절절하게 울려 퍼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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