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칼럼니스트
장경덕 칼럼니스트

앤드루 카네기는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 진화이론을 읽고 철학적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조직적 경영에 가장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이들이 부를 쌓는 게 문명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젊은 카네기는 달리 생각했었다. 서른 살 전에 이미 요새 돈으로 500만 달러를 거머쥐었던 그는 부의 원천을 자신의 노동이나 기술에서 찾지 않았다.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이나 총명함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마침 철강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때 자신이 운 좋게 그 기회를 잡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훗날의 변심은 놀라웠다. 스펜서에게서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자신처럼 부를 쌓는 데 보기 드문 재능을 지닌 이들이 그 돈을 공동체에 가장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써야 한다고 믿었다. 그 부를 어떻게 쓸지 노동자들이 결정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문명의 법칙에 어긋난다고 보았다. 그가 임금 인상을 기업 이익과 연계하기로 했던 약속을 깰 때도 이런 논리를 깔고 있었다. 노동자들의 생존에 필요한 것 이상을 주면 ‘게으른 자와 술 취한 자, 쓸모없는 자들’을 추어주게 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 자신이 가난한 이민 노동자의 집안에서 자랐고, 직물공장에서 실패를 나르면서 주당 1.2달러의 저임금을 받았으며, 기업을 일으킨 후에는 노동자의 친구 ‘앤디’로 자처했던 카네기였다. 하지만 결국 가장 지독한 노조 파괴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게 된다. 1892년 홈스테드 제철소의 파업은 최악의 유혈사태로 치달았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노동자 7명과 경비용역 3명이 사망했다. 주 방위군이 투입되고 100여 명의 노동자가 기소됐다.

9년 후 카네기는 J.P. 모건에게 철강회사 지분을 넘기고 2억2600만 달러를 받는다. 위키피디아는 이 돈이 2021년 화폐 가치로 73억 달러라고 했다. 2019년 포브스는 75억 달러로 계산했다. 당시 모건이 보낸 전신은 한 줄이었다. ‘축하합니다, 카네기 씨. 당신은 세계 최고 부자가 되셨습니다.’

1919년 84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여생은 위대한 자선가의 삶이었다. 창조주를 기쁘게 하거나 세정의 칼날을 피하려는 의도보다는 부에 대한 그의 독선적인 철학을 반영한 자선이었다. 그는 가장 값어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신중하고 현명하게 돈을 쓰려고 애썼다. ‘쓸데없이’ 임금을 올려주기보다는 3000개의 도서관을 지어주는 게 낫다고 믿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그 혜택을 본 이는 수백만 명에 이를 것이다. 하지만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최종 평가는 이랬다. ‘카네기가 자신에게 부를 안겨준 철강노동자들을 공정하게 대하는 데 재산과 시간을 썼더라면 그가 (자선활동으로) 이룬 것보다 1000배는 많이 이뤘을 것이다.’

카네기는 이른바 ‘강도 귀족’의 시대를 살았다. 그는 열세 살 때 무일푼으로 스코틀랜드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거대한 부를 일구었다. 철도와 마천루의 시대에 가장 낮은 비용으로 가장 강한 철을 공급하기 위해 헨리 포드보다 앞서 일관작업공정을 도입하고 규모의 경제를 추구했다. 그 과정에서 종업원과 경쟁자, 고객, 지역사회에 크고 작은 상처를 주었다. 지난 칼럼에서 소개한 ‘프라토의 상인’ 다티니의 삶도 그랬다. 오늘날 지구촌에도 그와 닮은꼴의 기업가가 많다. 

여기서 한 가지 사고실험을 해보자. 오늘날 누군가가 이 강철왕의 경영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점수를 매긴다면 어떨까? 

그가 노동자와 경쟁자를 대하는 자세는 사회적 책임(S) 부문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기업 지배구조(G)에 대한 평가도 좋을 리가 없다. 카네기는 ‘많은 사람이 주식을 보유하면 모두의 사업이 누구의 사업도 아니게 된다’며 기업공개를 꺼렸다. 그에게 환경(E)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는 그을음이 묻어나는 피츠버그를 피해 깨끗한 스코틀랜드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물론 강도 귀족의 시대 기업가를 오늘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잣대로 재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가 한 세기 넘게 변화를 겪는 동안 그 오랜 시간을 관통해온 화두가 있다. 기업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 누군가가 하나가 아니고 여럿일 때 상충하는 이해관계는 어떻게 조정할 수 있는가?

다티니와 카네기는 먼저 거대한 부를 축적하는 데 매진한 다음 말년에 자선사업으로 그 부를 환원했다. 이익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선한 행동을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더 윤리적으로 행동했다면 비윤리적인 경쟁자를 제치는 게 그만큼 어려워졌을지도 모른다. 다만 강철왕이 된 카네기처럼 이미 선도적인 입지를 굳힌 다음이라면 그만큼 변화를 주도하기도 쉬웠을 것이다. 오늘날 ESG 경영에서도 각 부문의 선도 기업이 더 큰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카네기는 ESG니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니 하는 것들에 골치를 썩일 필요가 없었다. 기업가로서 그의 목표와 행동 규범은 매우 단순한 것이었다. 누군가는 그 단순한 게임의 법칙을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한 세기가 흘렀고 우리가 그 시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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