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종호 한국강소기업협회 상임부회장·경영학박사
나종호 한국강소기업협회 상임부회장·경영학박사

어떤 식당 메뉴판 첫 페이지에 20~30만원대 식사 메뉴가 표시되어 있고, 그 다음 페이지에 5만원대 메뉴가 표시되어 있다. 그러면 손님은 5만원 짜리 식사가 실제 싼 가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주 적절한 가격인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할인마트에 갔을 때 가전제품 코너에서 중간에 1000만원 짜리 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 제품을 보고나서 100~200만원 짜리 제품을 보면 싸다는 느낌이 든다. 마찬가지로 마트에서 특별 할인가로 판매되는 제품들도 가격에 대한 정보가 하나의 기준점 역할을 하여 소비자들이 더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명품 매장의 전면에 몇천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가방을 진열해 놓는다. 이 경우 판매자는 해당 가방이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해당 금액이 기준점으로 작용하여 상대적으로 더 저렴한 다른 제품들에 대하여 소비자들이 ‘살만한 것’으로 인지하도록 하는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다.

보험설계사들은 고객과 상담을 할 때, 두 가지 이상의 보험 가입 안을 준비하여 가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10만 원짜리 보험을 제안하고, 나중에 5만 원짜리 보험을 보여주면 보험 계약 체결 확률이 더 높아진다. 상대적으로 더 저렴해서 가격에 대한 부담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자사의 주력제품이 10만원이라면 20~30만원 짜리 제품을 만들어 눈에 띄게 진열해두면 고객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느껴지는 10만원 짜리 주력제품을 많이 사게 된다. BtoB 제품을 고객사와 상담시에도 주력제품 하나만을 갖고 상담하는 것보다 비슷한 기능이면서 상대적으로 훨씬 더 비싼 자사나 타사 제품을 먼저 제시한 다음에 자사 주력제품을 보여주는 게 구매 계약 체결 가능성을 더 높일 수 있다.

비즈니스 협상에서는 원하는 조건 또는 가격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제시된 조건이나 가격이 기준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기대하는 것보다 다소 높은 조건을 먼저 제시하여 상대방에게 기준점으로 인지하도록 한 후, 계속 협상하면서 적절한 양보와 타협 조건을 제시하여 결국 자사가 원하는 이익을 얻는 것이다.

이것을 '앵커링효과(Anchoring Effect)'라고 한다. 먼저 제시한 숫자, 사물이 기준점이 되어 그 후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즉, 비즈니스를 할 때 나에게 유리한 가격을 먼저 제시하면 제시한 가격이 협상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일부러 높은 가격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앵커링 효과는 마케팅 영역에서 유용하게 활용된다.

초두 효과(Primacy effect)도 이와 유사하다. 먼저 제시된 정보가 추후 알게 된 정보보다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첫인상 효과’라고도 한다.

기업의 마케팅이 아닌 일상 생활에서도 앵커링 효과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소개팅을 하기 위해 상대방의 사진을 미리 보고 소개팅 자리에 나갔는데, 실물이 사진보다 괜찮다면 상대방에 대한 인상이 더욱 좋게 느껴지게 된다.

고가의 주요제품을 구매한 고객한테 그 제품의 보완재에 해당하는 저렴한 제품의 구매를 권유하면 대부분 구매를 결정할 확률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고가의 차량을 구매하기로 결정한 직후 차량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한 네비게이션이나 블랙박스 등을 제안하면, 가격이 아주 저렴하게 느껴져서 쉽게 구매를 결정하게 된다.

특히, 앵커링효과는 제품에 대한 정보나 기준가격이 없을 때, 더 큰 효과가 있다. 최초 개념의 신제품을 출시할 때, 기준이 되는 시장가격이 없기 때문에 높은 마진의 고가로 출시해도 가격저항이 별로 없다. 애플은 이런 전략으로 경쟁대비 높은 이익률을 확보해 왔다. 결국 세상에 없는 차별화된 신제품을 출시할수록 그만큼 이익률도 높일 수 있다.

이 밖에도 처음에 어떤 기준선을 두어 소비자 선택이 달라지게 하는 앵커링효과를 이용, 판매성과를 높일 수도 있다. 정가 20000원인데, ‘X’ 표시를 하고, 15000원에 할인해서 판다고 하면 판매가 늘어난다. 먼저 제시한 가격이 인상적인 기준점이 되어 그 후의 할인가격을 싸게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앵커리효과를 더 크게 느끼게 하기 위해 압박수단을 사용하기도 한다. 먼저 기준가격을 제시하고서 상대가 수용하지 않으면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방위비 분담금을 수용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고 흘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마케팅 자원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이런 앵커리효과를 잘 활용하면 자사가 갖고 있는 주력제품의 판매를 확대할 수 있고, 별도의 자원 투자 없이도 거래 협상이나 판매에서 상당히 유리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사단법인 한국강소기업협회 나종호 상임부회장(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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